사람들은 수학 공부를 하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중의 수학책은 여전히 문제 풀이와 추상적인 수학 이론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연의 비밀을 알아가는 일련의 연습 과정을 수학 교과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교과 과정은 수학 교육의 표준에 부합한다.
관찰하고, 무늬를 찾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려 내는 것은 생물학의 영역이다. 수학 공부의 시작은 생물학 공부이고, 무늬가 쌓이고 패턴이 만들어지고, 패턴이 쌓여서 자연의 구조를 이루면 비로소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되고, 형태가 생겨나 손으로도 만질 수 있게 된다. 이제 이것에 이름을 붙일 차례이다. 눈에 보이면서 형태가 있는 것은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화학의 영역이다. 모든 물질은 화학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관계식이다. 화학식을 알면 구조 모형을 만들 수 있다. 너무나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마침내 우리 앞에 그 형태를 드러낸다.
자연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과거가 되어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에 시간의 개념이 융합된다. 그러면 그동안 쌓인 패턴들이 붕괴되고 또 다른 패턴이 생성된다.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추가되면서 규칙이 있는 듯 보이지만 그 규칙이 무엇인지 알기 모호한 카오스의 세계가 생겨난다. 형태가 있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는 프랙털의 세계이다. 이 프랙탈의 세계는 화학의 세계이다. 카오스의 세계는 물리학의 세계이다. 새로운 패턴이 생성되는 동시에 기존의 패턴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을 한눈에 파악하려면 사람들의 지적 차원이 높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창의력이 뛰어나야 한다.
지적 차원이 높아졌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능력, 들리지 않는 것도 들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가 보지 않고서도 마치 가 본 것처럼 꿰뚫고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예측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과 같다. 차원이 높아야 보이지 않는 힘과 법칙의 세계가 눈앞에 그려지고,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규칙을 찾을 수 있다. 규칙을 찾아야 예측이 가능하다.
차원을 높이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창의적인 삶, 거룩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기에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따르지만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지 않는 시대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지식이 인문학적 소양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많이 본 아이가 보이지 않아도 더 잘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어야 한다. 많이 들어 본 아이가 들리지 않아도 더 잘 들을 수 있다. 아이들로 하여금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가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많이 가 본 아이는 가 보지 않고서도 마치 가 본 것처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생긴다. 즉, 바람직한 수학 교육은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 주고 많이 들려주고 많이 가 보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연이 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자연을 온전하게 체득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련의 연습 과정이 되어야 비로소 바람직한 수학 교육이 구현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정치, 권력 혹은 경제 생산 수단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지배자들은 권력 유지와 강화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이란 자신이 다스리는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힘을 의미한다.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땅과 사람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영토 확장과 피지배자들의 확보를 통해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경제학의 생산 수단에는 토지와 노동이 있다. 그러므로 권력이라는 것은 생산 수단, 다시 말하면 토지와 노동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힘을 뜻한다. 정치와 경제를 아울러 이해해야 권력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신하가 필요하고, 그들을 뽑기 위해서는 시험이 필요하며, 또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교과서가 필요하다.
권력자가 원하는 교과서는 어떤 모습일까? 권력자, 즉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졌을 것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백성, 국민, 소비자 중심의 교과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권력자가 만든 교과서는 소비자인 일반 백성들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권력자 중심, 공급자 중심의 교육의 특징은 교본이 한 종류뿐이라는 것이다. 또 항상 교사용 지도서, 지침서가 있다. 가르치는 방법이 천편일률적이고, 시험 문제도 한 종류이다. 시험 문제는 오로지 한 종류뿐인 교과서에서만 출제된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이런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소수의 권력자가 정해진 영토만 다스리면 되던 시기에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자본가가 권력자인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급자 중심의 교육은 많은 폐혜를 낳고 있다. 여전히 한 종류의 교과서를 이용하여 공부하고, 시험 문제는 교과서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의 권력자들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사람들을 줄 세우고 그중에 더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만을 채용한다. 선택받지 못한 소비자, 즉 국민은 도태될 뿐이다.
하지만 개인의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교육 제도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국가에 손실을 초래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재화와 용역 시장의 경계선은 예전과 오늘날이 전혀 다르다. 예전에는 나라의 울타리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갔지만, 현재는 울타리를 넘어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하다. 재화와 용역 시장의 경계선이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해외의 유명 상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공급자 중심의 교육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소비자 중심의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17년 참가한 미국 샌 앤토니오 교육 기술 박람회에서느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교육에서 소비자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CEO의 개막 전야제 연설에서 다음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을 이룰 수 없으면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교육 기술 박람회 주관사에서는 영상물을 만들어 미국 전역에 배포했다. 그 내용은 여러 아이들이 선생님이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물어봐 주고 가르쳐 주기를, 어떤 시험 문제를 냈으면 좋겠는지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우리(소비자)가 원하는 교육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아이들에게 묻지 않으면, 즉 소통이 없다면 아이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며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누구라도 재주 하나씩은 가지고 나온다. 그 재주는 부모가 물려준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창의력의 씨앗을 찾아내 그 싹을 틔워 열매를 잘 맺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은 선생님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 책은 더 이상 지식의 원천이 아니다. 앞으로의 책은 수많은 교육 소비자와 수많은 교육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교육 소비자 입장에서는 책을 펼치면 알고 싶은 것이 생기는 의욕을 솟아나야 한다. 수많은 교육 공급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누구에게 필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책이란 수많은 교육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소통의 채널이 되는 것이다.
그러러면 책은 자연 언어로 기록되어야 한다. 수식과 문제만 가득한 책은 교육 공급자과 교육 소비자를 연결할 수 없다. 세상의 대부분의 지식은 자연 언어로 말하고, 기록되고, 전달된다. 인공 지능의 발전에 힘입어 자연어 처리를 통해 정보를 검색, 저장, 출력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수많은 교육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기 위해 자연 언어로 수학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수학책이 전 세계 수학 교육의 표준을 따른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런 기반이 다져지면 궁극적으로 소비자 중심의 교육이 열린다.